Jun 1, 2012

20120601

 여행사 직원의 전화를 받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터키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었는데, 결제하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편도 티켓으로 다른 나라에 입국 시에 입국 거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터키 대사관과 공항 출입국 심사 담당, 그리고 외교통상부에 직접 전화를 해가며 알아보았지만, 터키로의 출입국 심사는 심사관의 재량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확답을 할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인터넷으로 열심히 알아보니까, 무비자로 입국 시에 편도 항공권 때문에 입국 거부를 당해 바로 그냥 한국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터키에 편도 항공권으로 문제 없이 입국한 전례를 보아서 그냥 편도 티켓을 결제하기로 하였다. 심사관에게 잘 설명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A4용지 아홉 장을 이어 붙여 만든 지도
 집에서 준비물 체크 리스트를 체크하며, 여행 때 갖고 다닐 지도를 컴퓨터로 만들어 출력하였다. 이 작업을 하는데 거의 한 세시간을 소비하였다.
 처음엔 Google map을 캡쳐해서 포토샵으로 이어 붙이기를 하였는데, 여간 귀찮은 작업이 아니었다. 한 두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고, 구글맵의 원하는 지역을 원하는 크기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하여 출력하였다. 애초에 원하던 축도까지 확대하여 출력하지 못 하여 아쉬웠지만, 그래도 개괄적으로 보기엔 적당한 것 같았다.

 준비물 체크 리스트의 물품들을 하나 하나 체크하며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그냥 이것저것 섞어 챙기면 헷갈리고 필요할 때 찾기도 힘들꺼 같아 카테고리 정해서, 주머니 몇 개에 나눠 담고, 그것을 배낭에 넣었다. 리스트에 있는 것을 거의 다 챙겨 넣으니 배낭이 꽉 찼다. 침낭은 아직 넣지도 않았는데 배낭에 여유 공간이 없다. 결국 침낭은 배낭 겉에 끈으로 고정시켜 매달았다. 배낭이 꽉 차고, 겉에 침낭까지 달려 있으니 제법 여행자의 배낭처럼 보였다.
 시험 삼아 한 번 매보았더니, 너무 무거워서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예상보다는 무거웠다. 여기다가 현지에서 자금 조달을 위해 기타까지 들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만만치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 만큼 느껴질 그 성취도는 더 클 것이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짐을 싸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부랴부랴 마지막으로 저녁을 급하게 먹었다. 삼겹살과 소고기를 먹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이렇게 잘 먹긴 힘들까? 후딱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설 준비를 마쳤다. 현관에서 떠나기 전 기념 사진을 찍었다.

 현관문 앞에서 어머니와 인사를 하고 후딱 엘러베이터에 탔다. 작별 인사의 시간이 길어지면 그 만큼 더 슬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 걱정을 많이 하시겠지만, 사실 난 어머니 걱정이 더 많다. 엘러베이터 거울에서 내 모습을 보니 상당히 이질감이 느껴진다. 장기간의 여행을 대비하여 짧게 밀어버린 머리 때문인지, 뒤에 매달린 커다란 배낭 때문인지, 마냥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인천국제공항까지는 지하철 - 공항철도 - 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버스는 혹시라도 막히거나 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공항철도는 서울역에서 탈 수 있었다. 큰 배낭을 매고 기타를 들고, 서울역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이 부피의 짐을 갖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엔 무리가 있음을 느꼈다.
 서울역 지하에서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공항철도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더더군다나 어디 물어볼 안내원이나 안내센터 같은 곳도 보이지 않았다. 안내센터가 어디에 있다는 이정표 또한 없었다. 한 나라의 수도에서, 그 수도의 이름을 가진 역사(驛舍)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새삼 배낭을 매고 외국으로 나가는 입장에서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안내센터 조차 이렇게 찾기 힘들어서 대체 외국인이나 관광객은 어찌하란 말인지.

 혼자 힘으로 찾아 보려, 무거운 배낭을 매고 기타를 들고, 그 큰 서울역 지하철 역사를 헤매다가, 지하철 개찰구의 장애인 시설 이용 안내 버튼을 두 번 눌러서야 공항철도는 지하철 역사가 아닌 기차역 역사에서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11번 게이트
 공항철도로 한 시간쯤 갔을까.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의 외국인들을 보니 점점 실감이 났다. 터키 항공에서 항공권을 발권 받았는데, 복도자리와 창측자리는 모두 나가서, 비행기 중앙에 사람들 사이에 앉는 좌석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배낭은 화물로 보내고, 기타는 대형 화물로 따로 보냈다.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출국 수속까지 마쳤다. 한국 땅을 밟고 있지만, 출국 수속을 마쳤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한국에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순간이었다.

 밤 11시 50분 출발인데, 게이트에 도착하니 탑승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다. 휴게 의자에 혼자 앉아서 가만히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 생각 저 생각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느끼는 것, 이것이 혼자 여행하는 묘미인가 싶었다. 막상 비행기를 보니 두려운 기분도 들었다. 괜히 이렇게 나왔나 싶기도 했다. 그냥 편하게 지내면 되는데 뭐하러 사서 고생하나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어떠한 경험을 겪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들었다.


 티켓을 건내며 게이트를 통과하고 터키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혼자서 이러한 경험을 하는 것이 상당히 낯설다.

 비행기 안, 사방에 외국인들이 앉아있는 가운데 혼자 있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비행기 이륙 전까지만 해도 기내방송에 터키어, 영어, 한국어가 나왔었는데, 이륙 후에는 한국어가 나오지 않는다. 뭐라 말하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에, 터키어는 알아들을 수 없으니, 영어 방송에 집중했다. 그래도 영어 방송도 터키 악센트 탓인지, 내 리스닝 실력 탓인지, 잘 못 알아들은 부분이 있어서 불안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기내식 메뉴판을 나눠줬는데, 비행 동안에 기내식은 총 두 번 제공되는 듯 했다. 무척 배고팠는데 기분이 좋았다.

터키어 아니면 영어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한국 시각 새벽 한시 십오분, 첫번째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배가 고파서인지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 저녁을 먹을 때 준비하면서 급하게 대충 먹었던 터라 배가 많이 고팠다. 기내식을 다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서 하나 더 달라고 했더니 나중에 식사 제공 된다며 안 준단다. 벌써부터 괜히 서러웠다.

 비행기 중앙열, 그것도 사람들 사이에 껴서 가는 자리라, 할 것도 없고 심심해서, 가는 길에 터키어나 좀 배워볼까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을 걸었다. 왼쪽 여자는 영어권이었는데 터키어를 못 한다고 했다. 오른쪽 아저씨는 영어도 잘 못 한다고 한다. 어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독일인이라고 했다. 독일가는 길이냐니 그렇다고 한다. 아마 이 비행기로 경유해서 가나 보다. 터키어 공부는 물 건너 갔다는 생각과 동시에, 원래 유럽의 국가별 언어 기본과, 대략적인 역사를 프린트해온다는 것을 깜빡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바쁘게 준비하면 항상 뭔가 하나씩 빠뜨린다. 사실 체크 리스트까지 작성하여 준비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디어는 배낭 쌀 때 떠오른 것이라 깜빡하였다.

 참고로, 내 오른쪽에 앉은 아저씨는 헐리웃 영화 배우, Bruce Willis(부르스 윌리스)를 닮았었다. 식사 전에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기내식 메뉴판을 나누어 주었을 때, 그 때 이 아저씨는 자고 있었다. 그래서 승무원이 메뉴판을 자리 옆에 꽂아두고 갔던 거 같은데, 나중에 식사가 서빙 될 때 내가 메뉴판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좌석 앞의 잡지꽂이를 막 뒤적이며 찾으려 애썼다. 그 모습을 본 내가 메뉴판을 같이 보자고 했더니 고마워했다. 그리고 곧 내가 아저씨 옆에 꽂혀있던 메뉴판을 발견하고 찾아줬더니 더 고마워하며 웃었다.
 머리는 해병대 스타일의 짧은 머리이고, 손에는 주먹뼈 부분에 굳은 살들이 눈에 띄게 보였는데, 군인인가 싶기도 하고 살짝 무서웠지만, 그 일이 있은 후에는 웬지 비행기 테러가 발생하면 지켜줄 것만 같고 (영화 다이하드처럼) 안심이 되었다.

 한국 시각으로 두시 십칠분. 거의 모든 승객들이 자고 있다. 도착까지 대략 아홉시간 남았는데 나도 잠이나 좀 잘까 생각했다. 그런데 자다가 두번째 기내식을 놓칠까봐 걱정하였다.

 자려고 했는데 간식을 나눠줬다. 물이랑 무슨 과자 같은 건데, 포장지에 터키 국기가 그려져있다. 필통 같은 것도 주었는데, 거기엔 귀마개랑 양말, 립밤 등 기념품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간식과 함께 모두 주머니에 챙겨넣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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